[알리야]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긴 귀향길

관리자
2021-03-03
조회수 197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긴 귀향길


이스라엘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에티오피아 북부 곤다르에 살고 있는 남아있는 유대인들의 알리야를 시행했다.

엘리아나 루디 기자 (2021년 1월11일/JNS) 

주르 작전(이스라엘의 반석 작전)으로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 (사진출처: 올리비에르 피투시/쥬이시에이전시)

 

디아스포라 유대인 역사 전문가들은 유대인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알려야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타당성과 그들만의 개성이 존중되어 질 것이라고 믿는다. 소수 종족 유대인을 알리는 JNS의 새 연재는 그들의 상황을 널리 알려서 그들 역시 그들만의 개성을 갖춘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2020년 930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산가족을 재결합하기 위한 계획인 주르 작전에 의해 입국하였다. 이주자들은 영양실조, 궁핍과 코로나로 인한 에티오피아의 열악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2,000년 동안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바래왔던 꿈을 이루었다.  

작년 10월 이스라엘 정부의 에티오피아 유대인 송환 결정에 따라 쥬이시에이전시와 이스라엘 알리야 통합부 그리고 이스라엘 내무부의 협력으로 파견된 전세기가 2,000명을 태워왔다. 그들 중 다수는 솔로몬 작전 때 구출되지 못하고 그들의 가족과 작별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이들이었다. 알리야 통합부 장관 프니나 타마노 샤타는 이들을 고토로 데려 오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끔찍하고 비도덕적인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이며 이들의 가족은 에티오피아와 이스라엘로 부모자식간 나뉘어졌었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복잡한 역사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왕국(후에 곤다르 왕국이라 일컬어짐)의 백성들이 5-6 세기 경 상인과 기술자 등으로 에티오피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에자나가 황제에 즉위한 325년에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전향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유대인과 기독교도들 간의 내전이 발생하였고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독립적인 나라를 건설하여 그들의 유대신앙을 이어올 수 있게 되었다. 숱한 정권교체와 전쟁들, 개종을 강요하는 시도들 속에서도 구전에 의한 유대전통 전수와 20세기까지 이어진 유목민 같은 생활은 후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1948년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 이래로 이스라엘 정부는 95,000명의 에티오피아 인들을 알리야 시켰다. 1980년대 중반, 8,000명이 모세 작전을 통하여 수단을 거쳐 입국하였다. 또 1991년 시행된 솔로몬 작전의 일환으로 14,000명을 공수하여 오기도 하였다. 2013년 여름, 쥬이시에이전시는 비둘기 날개 작전을 결정하였고 이 안에는 7,000명의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을 알리야 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날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북부에 위치한 곤다르에는 약 13,000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쥬이시에이전시에 따르면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 스스로 고향이라 여기는 이스라엘로 알리야 하기만을 빈곤에 처한 채로 기다리고 있다.

타마노 샤타 장관은 JNS를 통하여 “제 목표는 알리야를 서둘러 결과적으로 곤다르와 아디스아바바의 유대인 촌락을 폐쇄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주르 작전으로 219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을 태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를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맞이하는 프니나 타마노 샤타 알리야 통합부 장관 

(사진: 아시붸그 샤아르 예슈브)


타마노 샤타 장관은 3세 때 모세 작전을 통하여 에티오피아에서 알리야 되었다. 그는 2020년 작전을 선포하며 “통합 정부가 내린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결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많은 논란과 논쟁을 뛰어넘는 순간이자 많은 인명을 구하는 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인류로써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일깨우는 국가적 사명의 순간입니다. 수 천 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된 특권을 다시금 우리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지지부진한 진행과정


이스라엘의 다른 이주자들과 비교하였을 때,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이주는 가장 지지부진하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에티오피아의 유대인 사회에는 다양한 그룹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 남아있는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오기에는 이스라엘 정부에게 경제적, 종교적 압박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8,000명의 팔라쉬무라(1900년대 초반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2015년 정부에 의해 승인된 그들에 대한 알리야가 시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주가 2018년에 재승인 되자마자 이스라엘 언론에는 팔라시무라 유대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유대법을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조부모 중 한 명이 유대인인 사람 중, 한 개인이 유대교 외의 다른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배우자와 자녀와 함께 알리야할 수 있다’라는 이스라엘의 귀환법에 따라 이주가 허락되어서는 안되며 기사가 올라왔다.

 

“제 목표는 알리야를 서둘러 결과적으로 곤다르와 아디스아바바의 유대인 촌락을 폐쇄하는 것입니다” 

프니나 타마노 샤타 알리야 통합부 장관

 

대다수의 이스라엘인은 이 주장은 무지한 것이며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심장이라는 단체의 대표 아론 캇소프는 “법과 전통에 따라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심장은 성경적 중심부인 이스라엘에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정착할 기금을 비냐민 펀드와 함께 마련하는 단체이다.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극빈과 열악한 생활을 보도하기 위하여 매달 아디스아바바와 곤다르를 방문하는 캇소프 대표는 이전에 JNS를 통하여 “팔라쉬무라 간의 근친혼은 극히 드물었다” 고 말하였다.


 “그들 중 대다수는 슐에 가거나 미크바에 가서 안식일을 지킵니다. 찬 음식을 먹으며 그들이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이유로 일자리도 때때로 잃게 됩니다. 코셔 방법으로 도축된 고기가 없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은 9년 이상 고기나 닭고기는 손에도 대지 못해보았습니다. 아브월 9일동안 이스라엘과 미국에 있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고기를 먹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캇소프 대표에 따르면 팔라쉬무라 유대인들이 알리야 할 때, 대부분은 토라를 지키는 유대인이 되고 일반 유대인들 보다 높은 비율로 그들의 자녀를 종교적인 학교로 보내게 된다고 한다. 그는 팔라쉬무라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자들과 재정적인 이유, 그리고 정치적 구실로써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질문하며 “팔라쉬무라들은 우리들 대부분보다 더욱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타마노 샤타 장관은 주르 작전으로 알리야 되는 새 이민자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며 “이들 중 다수가 스스로 베타 이스라엘 커뮤니티를 떠나기로 선택하였으며 그 결정은 유대인 사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중 대부분은 그들의 뿌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지 않았고 조상 대대로부터 그들은 유대인입니다. 이것이 왜 지체되는가에 대한 이유입니다” 라고 하였다.

2020년 12월 22일, 주르 작전의 두 번째 비행기가 새로운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태우고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진: 아시붸그 샤아르 예슈브)


타마노 샤타 장관은 유대인으로서의 그들의 자격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재정적인 이유로 알리야를 지연시켜야 한다는 조언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때야 말로 사람을 수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경제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이들과 같은 에티오피아 출신으로써 저는 그들이 고통 받는 것을 멈추도록 도울 것이고 이 인도적으로 아픈 상황을 끝내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라고 밝혔다.


초정통파 랍비이자 이스라엘 국방부 예비군 대위인 샤론 샬롬 박사는 “에티오피아 유대인 사회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프린스턴대의 제 친구이자 예멘인이자 에티오피아인인 에프라임 이삭 교수는 과거에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에 대한 연설을 했었는데,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폴란드에서 온 아쉬케나짐 유대인 한 명은 유대인과 에티오피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에프라임 교수는 성경을 들고 에티오피아라는 단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최소 50번 이상 에티오피아라는 단어가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리고는 에프라임 교수가 이번에는 폴란드라는 단어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한 단어도 등장하지 않지만 질문자의 질문은 폴란드와 유대인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샬롬 박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10 지파로부터 내려오는 이들이다. 그는유대법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들의 유대성을 의심할 여지는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샬롬 박사는 에티오피아계 초정통파 랍비로써 그를 향한 위선자들의 공격들을 표한 바 있다. 그가 그의 저서 시내에서 에티오피아로 라는 책에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그들이 유대 전통과 유산을 계속 이어 가도록 허락해주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을 때를 회상하며, “그 즉시 나는 초정통파 하레딤들 사이에서 이단으로 낙인 찍혀버렸습니다. 하레딤들의 관점에서는 내가 정통이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동유럽 털모자를 쓴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이 저를 그렇게 공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털모자는 폴란드의 것입니다! 폴란드 사람들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유대인의 것이 아닙니다. 폴란드계 유대인들이 그 전통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블랙리스트에 넣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에티오피아 유대인 랍비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

 

알리야 준비

쥬이시에이전시의 통합과 알리야 부서의 쉐이 펠버 부장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정착은 사실 그들이 에티오피아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쥬이시에이전시의 현지 스텝들이 알리야 대상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서류작업, 의료검진부터 검열과 이민까지 그들이 알리야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육이 시작된 지 첫 1년 동안 이스라엘에서의 삶, 정착촌, 교육 시스템, 취업 전망 등을 배우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이 에티오피아로 넘어 가서 젊은 세대들을 만나고, 이스라엘에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맞춰진 다양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펠버 부장은 JNS와의 인터뷰에서 알리야한 사람들은 정착촌으로 옮겨지고 그곳의 스텝들은 암하라어를 사용하며 갓 이주한 이들에게 친숙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펠버 부장은 이어서 “정착을 돕는 모든 스텝들은 올림(이주자)들의 필요사항에 민감할 수 있도록 특별 교육을 받습니다. 새로 온 올림(이주자)들이 정착촌의 스텝들에게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그들만의 고유 전통과 문화 역시 잘 보존하며 지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한 겨울옷과 온열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올림들이 음식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들이 익숙한 과일, 채소와 레굼(콩류)을 제공합니다. 정착촌에 적응한 올림들은 그들 후에 새로 이주해 오는 올림들을 홈메이드 인제라(빵류)와 에티오피아 음식을 만들어 환영합니다” 라고 하였다.

 

2020년 12월 3일 이삭 헤르조그 쥬이시에이전시 총재와 주르작전으로 벤구리온 공항에 입국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사진: 올리비에르 피투시, 쥬이시에이전시 제공)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

모든 이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가끔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더러는 그들의 피부색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타마노 샤타 장관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구체적인 어려움으로는 첫째, 두 국가 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1980년 대에 알리야 했을 때, 이 어려움은 더 컸습니다. 오늘날 알리야 하는 올림(이주자)들은 그 당시 보다 더욱 준비된 채로 이스라엘에 오긴 하지만, 여전히 올림들이 극복해야 할 두 국가 사이의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들 중 다수가 시골에서 온 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피부색에 의한 갈등은 인종차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문제는 저 역시도 수년 동안이나 겪어 온 것입니다” 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의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만연해왔고, 작년에 근무 중이 아니던 경찰관이 쏜 총에 의한 젊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의 사망사건으로 인종차별의 문제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하였다. 시위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이스라엘 경찰과 정부의 인종차별로 인한 고발은 이스라엘 전역을 놀라게 했으며, 정치적 성향을 띄는 단체들은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하여 시위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발생했다.


한편 많은 이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인종차별 사이의 유사점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할 수 있지만, 타마노 샤타 장관은 “에티오피아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그들은 특정 도시에만 정착하게 되기 때문에 가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사회로 흡수되는 것과 동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다. 이에 더하여 타마노 샤타 장관은 “객관적으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으며 추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자살율을 포함합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 사회 내에서의 자살율은 더 높습니다” 라고 첨언하였다.

 

“유대법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의 유대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습니다” 

-정통파 랍비이자 이스라엘 예비군 대위 샤론 샬롬 박사

 

샬롬 박사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에 대하여 왜 이러한 차별과 언쟁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문제의 근원은 인종차별이 아닙니다” 라고 강조하였다.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에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겪는 어려움들은 그들이 미국에서 겪을 법한 어려움과는 뚜렷하게 차이가 있으며, 그들의 주된 어려움은 그들의 검은 피부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에 대한 정의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인종차별이 문제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흑인과 미국의 흑인이 겪는 어려움을 동일시 하는 것은 매우 표면적일 뿐이라고 샬롬 박사가 이어 말했다.

또,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어려움과 갈등을 미국 내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고 미국에서의 문제는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아슈케나짐(러시아-동유럽 출신 유대인)과 에티오피아 유대인 사이의 결혼율은 약 12퍼센트 정도이지만(수 십 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높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오직 6%만의 혼종결혼을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로 알리야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다른 국적의 올림들에 비하여 더욱 큰 정부의 포괄적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 지고 있다. “지방 당국과 국가기관은 그들의 이스라엘 사회 정착을 위해 모든 일을 합니다. 심지어 올림들이 정착촌을 떠난 후에도 이러한 노력은 계속 됩니다” 라고 타마노 샤타 장관이 밝혔다.

펠버 박사는 “지방 당국은 정착에 대한 지원을 받습니다. 지방 당국 내에 이주자의 정착을 위한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일꾼들이 있어서 교육, 복지 그리고 이주자에게 필요한 포괄적 지원을 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교육 체계는 에티오피아와 다르고 가족 구조도 변하고 있고 경제 시스템도 다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올림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잘 적응하게끔 합니다” 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군대 내에서 주요한 돌파구가 있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입대를 하고 샬롬 박사처럼 군 내에서 리더십으로 성장하고 있다.

쥬이시에이전시의 이삭 헤르조그 총재는 에티오피아에서의 알리야 사전 준비부터 이스라엘 전역에 존재하는 정착촌까지 새로 이주해 오는 올림들을 섬길 것이며 히브리어 클래스와 이스라엘 교육 시스템과 취업을 준비시키며 사회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2년동안 지원할 것이라고 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올림들의 알리야 사전 준비를 함과 동시에 쥬이시에이전시는 에티오피아에서 알리야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소아와 임산부, 산모를 위한 메디컬 케어와 영양 프로그램과 같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미래

타마노 샤타 장관과 샬롬 박사는 이스라엘에서 성공한 에티오피아 유대인들 중 일부일 뿐이다. 이스라엘에는 많은 에티오피아 유대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백 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타마노 샤타 장관이 주도가 되어 젊은 부부가 주택담보대출과 방과후 활동을 지원받고 에티오피아 이민자들을 위한 교육을 관리하는 빈곤지역의 도시재개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타마노 샤타 장관은 “우리가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의료, 법, 여가, 방송, 정치 등 생활의 전반에서 많은 돌파가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 첫 에티오피아계 장관이 되어 정부에 속하여 일할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항상 저는 이 자리가 제 개인적인 자리가 아니라 에티오피아 유대인 모두의 영광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그들도 할 수 있고 그들이 꿈 꾸는 모든 영역에서 설 수 있음을 깨닫길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타마노 샤타 장관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새로이 알리야한 인원이 가을 경 500명이었지만 1월말까지 2,000명이 최종적으로 알리야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그는 잠정적으로 약 1만의 에티오피아 유대인이 알리야 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기다림에 부응을 해야할 것입니다” 타마노 샤타 장관이 말했다.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