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알리야 이야기] 나오미 오렌 : 시베리아에서 이스라엘까지

나오미 오렌이 태어난 것은 기적입니다. 그녀의 부모는 아들 하나를 원했고, 그녀의 형이 태어났을 때 그들은 아이를 갖는 것을 끝냈습니다. 나오미의 어머니는 나오미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낙태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어요"라고 나오미(35세)는 원망 없이 말했습니다.
그녀는 시베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시베리아 사람들조차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군대에서 일하셨고, 그녀는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어떤 휴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내가 유대인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나오미는 말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유태인에 대한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유태인이라고 말하자, 몇몇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오미의 어머니에게 쥬이시 에이전시 활동과 컨퍼런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나오미를 데리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미가 14살이었을 때,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부모 없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알리야를 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나알레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라고 나오미는 회상합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녀가 떠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녀가 떠나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키부츠 가돗에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과 장소와 새로 찾은 자유를 사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는 키부츠의 입양 가족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제 가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사랑과 보살핌이 넘치는 가정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 주셨고, 이제 제 가족도 그분들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왔을 때 저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비행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키부츠 가족은 후자라고 확신했습니다."
나오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대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국가 봉사를 했습니다. 그녀는 종교적, 비종교적 동료들과 함께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활동을 운영하는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공군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가 이 부대에 배치된 것은 우연이었고, 그것은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부대 사령관으로 승진했고, 신병들에게 말할 때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밤 늦게까지 히브리어를 연습했던 일을 기억하며 웃었습니다.
나오미는 군 복무 후 공학 전공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실용 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학생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공학 전공을 계속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 성적을 향상시킨 후, 카르미엘에 있는 브라우데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산업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혼자 살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라고 나오미는 말합니다. "대학에 다니고, 성적을 유지하고,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 새로운 이민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아티딤(Atidim)이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테이크오프(TakeOff)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을 때, 그녀는 지원했습니다. "정말 놀라웠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생활비, 개인 교습, 학업 상담, 노트북, 그리고 주니어 학년 동안 제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오미는 신입생 시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카르미엘 흡수 센터(Karmiel Absorption Center)에서 새로운 이민자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나오미는 "이스라엘에서의 첫 해에 새로운 올림을 돕는 것은 저에게 고리를 닫는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 이야기를 했고, 제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 나라에서 도전만이 아니라 기회를 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이것이 자신이 되돌려 주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받았고, 내 인생의 또 다른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나는 돌려주기 위해 무언가를 합니다. 또한 아티딤 동문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학생들을 멘토링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주니어 학년 동안 Atidim은 Naomi가 Super-Pharm의 정보 시스템 학생 일자리를 확보하도록 도왔으며 그녀를 강력한 상승 경력 경로로 설정했습니다. 그곳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녀는 컨설팅 회사로 옮겨 이스라엘의 주요 방위 산업 중 한 곳에서 8년 동안 일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서 가장 놀라운 기회를 가졌고 제 분야에서 진정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경력이 번창함에 따라 개인 생활도 번창했습니다. 나오미는 대학 시절 남편을 만나 결혼한 지 9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선도적인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섯 살짜리 Lavi와 두 살짜리 Ivri라는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이 나라에 왔을 때 처음 느낀 것 중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정말 특권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가족은 키르얏 아타(Kiryat Ata)에 살고 있으며 현재 키부츠 아펙(Kibbutz Afek)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최근 2024년 6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선정된 엔비디아(Nvidia)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전쟁은 이스라엘을 향한 나오미의 사랑을 조금도 식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저를 더 애국심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여기는 내 집이고, 나는 좋든 나쁘든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나라는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출처 : 나오미 오렌의 알리야 이야기 - The Jerusalem Post (jpost.com)
<기도제목>
하나님, 전세계에서 직업,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향하는 알리야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시간표는 멈추지 않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알리야하는 유대인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다양한 배경과 환경속에서 알리야 한 유대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필요들을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