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유대인 이주 후원
리투아니아 유대인 25명 알리야 프로젝트
희망의 여정에
함께해 주세요
2025년 알리야 예상 인원: 25명
1인당 알리야 비용: $500달러 (한화 약 70만원)
총 알리야 비용: $ 12,500달러 (한화 약 1738만원)
* 한화 금액은 환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해당 프로젝트는 전세기가 아닌 개별 항공편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유대인들은 각기 다른 항공편을 통해 개별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D-122
종료
신한 100-036-324010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한 100-036-320803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협 131-022-220422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협 131-022-220439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한 180-012-833430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리투아니아 유대인의 역사는
홀로코스트 시기를 거치며
홀로코스트 시기를 거치며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오랜 세월 동안 유대 지식과 신앙의 중심지로 불리며,
유럽 유대인의 영적 고향 중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리투아니아에 처음 정착한 것은 14세기경으로,
당시 대공국이었던 리투아니아는 상대적으로 종교적 관용이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1388년, 대공비타우타스(Vytautas)는 유대인들에게 공식적인 권리와 보호를 부여하는
칙령을 선포했고, 이는 유대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리투아니아는 유럽 유대인 세계에서 지적 중심지로 부상하며,
많은 유대인 학자들을 배출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795년,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고,
유대인들은 팔레 오브 셋틀먼트(Pale of Settlement)에 포함되어
제한된 거주 지역 내에서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많은 리투아니아 유대인 청년들이 시온주의 지도자로 성장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건국 초기 지도부의 많은 인물들이 리투아니아 출신이었습니다.
리투아니아 유대인의 역사는 홀로코스트 시기를 거치며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 중 한 곳으로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으로부터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이후,
단 몇 달 만에 약 220,000명의 유대인 중 195,000명 이상이 집단 학살 당했으며,
이 수치는 리투아니아에 거주하던 유대인의 95% 이상이 학살된 수치입니다.

소련 치하를 겪은 리투아니아 유대인들은
신앙을 잃고, 공동체도 잃고,
신앙을 잃고, 공동체도 잃고,
조용히 존재만 유지한 채 살아왔습니다
전쟁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대부분 리투아니아를 떠났고,
일부는 소련 내에서 숨어 살며 종교 활동을 유지했습니다.
970년대~80년대에는 유대인 해방 운동(Refusenik Movement)의 일환으로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알리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미국, 독일 등지로 이주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신앙과 자유를 찾아 떠났습니다.
오늘날 리투아니아에는 약 3,000명 정도의 유대인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 빌뉴스에 거주합니다.
빌뉴스에는 복원된 시나고그, 유대 박물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유대인 문화재가
유지되고 있으며, 소규모지만 유대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련 치하를 겪은 리투아니아 유대인들은 수십 년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신앙을 잃고, 공동체를 잃고,
조용히 존재만 유지한 채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이들은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꿈꿉니다. 하지만 대부분 노년층이거나 히브리어를 전혀 모르고,
생활 기반도 없으며, 이주 자금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그 귀환은'꿈'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리투아니아 유대인들의 꿈이자 하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유대 백성을 다시 이스라엘로 모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그 언약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는 자가 아니라 함께 이뤄가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