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유대인 이주 후원
라트비아 유대인 35명 알리야 프로젝트
희망의 여정에
함께해 주세요
2025년 알리야 예상 인원: 35명
1인당 알리야 비용: $500달러 (한화 약 70만원)
총 알리야 비용: $17,500달러 (한화 약 2435만원)
* 한화 금액은 환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해당 프로젝트는 전세기가 아닌 개별 항공편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유대인들은 각기 다른 항공편을 통해 개별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종료
종료
신한 100-036-324010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한 100-036-320803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협 131-022-220422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협 131-022-220439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신한 180-012-833430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이 라트비아를 점령하면서
독일군이 라트비아를 점령하면서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 중 하나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교차해 온 땅입니다. 이 땅에는 수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독자적인 문화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라트비아 유대인의 역사는 번영과 발전만이 아닌, 깊은 고난과 생존,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라트비아 지역에 유대인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16세기 말~17세기 초로 추정됩니다. 초기에 유대인들은 주로 지방 도시들에서 상업, 금융, 무역에 종사하며 점차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라트비아가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유대인들은 러시아 제국 내 '팔레 오브 셋틀먼트(Pale of Settlement)'의 일부로서 제한된 지역에서 거주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라트비아에는 더 많은 유대인 인구가 유입되었습니다.19세기 말에는 시온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젊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자각과 정치적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일부는 일찍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는 초기 알리야(Pre-State Aliyah)의 주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이 소련으로부터 라트비아를 점령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유대인 공동체는 다시금
유대인 공동체는 다시금
회복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라트비아에는 약 93,000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으며, 이 중 약 70,000~90,000명이 전쟁 기간 동안 집단 학살당했습니다.전쟁 후 살아남은 소수의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곧 소련의 통치가 시작되며 또 다른 억압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종교활동, 시온주의 활동, 히브리어 교육 등이 금지되었고, 종교 시설은 폐쇄되거나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유대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했기에, 많은 이들이 종교적 전통을 포기하거나 비공개적으로 지켜야 했습니다.일부 유대인들은 1970~80년대에 소련 체제를 탈출해 이스라엘로 알리야하거나, 미국·캐나다·서유럽으로 망명했습니다.
1991년, 라트비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유대인 공동체는 다시금 회복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와 문화 활동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회당이 다시 열리고 유대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으며 많은 라트비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알리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라트비아에는 약 6,000명 ~ 7,000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남아있으며, 이스라엘로 알리야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트비아 유대인의 역사는 한 나라의 소수 민족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럽 유대인들의 운명, 홀로코스트의 비극, 정체성과 회복의 여정이 모두 응축된 역사입니다.
이제 라트비아 유대인들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이스라엘에서 정체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